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사파롱가 해전 (문단 편집) === 전략적 영향 === 과달카날의 일본군에게 있어, 이 해전은 사형선고에 불과했다. 아사 직전의 병사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소식은 일본 해군이 미군 중순양함들을 박살내고 승리했다는 승전보가 아니라, '''오늘 밥 없다'''는 비보였기 때문이다. 당장 굶어죽게 생겼는데 승전보가 날아와야 아무 의미없다. 타사파롱가 해전은 분명히 미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지만, 미 해군이 일본 해군의 목적인 보급품 수송을 저지함으로써 전략적인 승리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미 해군이 타사파롱가 해전의 결과로 위축되어 이후 과달카날 근해에서 강력한 수상함대를 이용하여 일본 해군 구축함들의 수송 작전을 막을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일본군이 수송선을 이용해서 대량으로 과달카날에 물자를 보급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었다. 해전 이후 일본 해군은 12월 3일부터 11일까지 구축함을 이용해 쥐 수송을 벌였지만, 낮에는 미군의 공습을 당했고 밤에는 미군의 어뢰정들이 공격해왔다. 일본 구축함들은 이런 공격에 시달리는 바람에 제대로 보급품을 과달카날에 전달할 수가 없었고, 작전에 투입된 구축함의 피해가 속출하자 야마모토는 구축함을 이용한 보급작전 자체를 취소했다. '''타사파롱가 해전의 승리는 전황을 타개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다.''' [[과달카날 해전]]으로 빼앗긴 제해권과 제공권은 타사파롱가 해전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일본에게 돌아오지 않았고, 일본군은 구축함의 쥐 수송까지 끊어지자 잠수함을 이용한 보급작전인 '두더지 수송'까지 시도했지만 이것도 실패했다. 결국 과달카날의 일본군은 제대로 된 보급을 받지 못하고 고립되었으며,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한 일본군은 과달카날을 포기하고 철수하게 된다. 그래서 타사파롱가 해전은 마이너한 전투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태평양 전쟁의 흐름을 바꾼 사보섬 해전과 달리, 기울어져 가는 전세를 바꾸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